Thursday, December 14, 2006

거의 방학

다 끝나고, 물리학사 페이퍼 하나 남았음. 아싸.
물리학사 페이퍼 마감 1월 2일. 흠.. 이건 그닥;;

혹시나 해서, 방금 성적 확인을 해봤음.
일찍 페이퍼 마감한 언어철학 점수 떴다.

B+

엥.. 이게 모야;;; ㅜ_ㅜ;;

쓰기 싫어 대충 쓴 거 너무 티났나?
결석 너무 많이 한 거 너무 티났나?
선생님 많이 욕한 거 어디서 들었나? (이건 농담 -.-;)

논문 투고

11월 말에 과학철학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작년 말에 썼던 기말보고서를 대충 고쳐서 냈다. 지난주 금요일에 심사결과가 왔다. 편집인 말로는, 심사위원의 요구대로 수정하면 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이상한 점수표만 있고, 심사의견서가 없는거다. 점수표 위에는 심사위원 이름도 다 적혀있고 -_-;

이거 원래 그런건가 싶다가도, 너무 이상해서 월요일에 메일을 보냈다.
"제가 봐야 할 건 안오고, 봐선 안될 것만 온 것 같습니다."

화요일에 답장이 왔다.
"정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심사의견서를 다시 보냅니다.
전에 보낸 건 안 본 걸로 해주세요."

-_-;

어쨌든.. 멀쩡한 심사의견서가 왔다.
두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보낸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위의 논문은 총 12쪽(참고문헌 포함 13쪽)에서 3쪽에 걸친 ‘2. 쿤의 개념에 대한 이론과 유사관계’에서는 Baker, Chen & Andersen(2003)의 논문을 8회 언급한다. 이어서 나오는 4.5쪽 분량의 ‘3. 쿤의 퍼즐 풀이와 사례 기반 추론’에서는 Nickles(2003)을 무려 26회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5쪽에 걸친 ‘4. 모형 기반 추론’은 Nersessian(2003)의 논문을 6회나 명시했을 정도이다. 위의 횟수는 각주가 아닌 논문의 본문에 기재된 것만을 적었다. 약간의 과장 섞인 표현을 하자면, 매 문단마다 위의 세 논문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필자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질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위의 논문은 인지과학의 최신 논의를 과학철학의 논의에 적용시키는 최근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도, 차라리 자칫 앞서 언급한 세 논문의 논의를 연결시킨 것으로 평가하기에 딱 좋아 보인다."

아핫;;; 들켰다 -_-; 저 3개만 보고 쓴 거 맞는데 어째..
게다가 세 논문은 Thomas Kuhn이라는 논문모음집에 연달아 실려있는 논문. 하하.. 지적한 사항 고치려면 일단 다른 논문부터 한참 읽어야 할텐데말야. 일단 이번에 고치는 건 포기. 다음에 고쳐서 보내도 실어준다고 하니, 맘편히 시간들여 고쳐봐야지.

머리

일요일에 비싼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게 쳤다.
맘에 안들었다.
참을까 하다 오늘 학교 이발소에 갔다.
"다듬어 주세요."
한참 손질을 하고 난 후, 안경을 씌워주며
"어때요?"
이리 저리 얼굴을 돌려보다,
"여전히 좀 어색한데, 위랑 뒤도 좀 잘라주시겠어요?"
"네"
잠시 손질을 하고 난 후, 안경을 씌워주며
"이제 괜찮나요?"
또 거울을 한참 보다..
"흠.. 저 앞머리도 좀 잘라주시겠어요?"
"아.. 짧아서 어색한 걸텐데요."
"그래도 그냥 잘라주세요."
잠시 손질을 하고 난후, 가운을 벗기며
"수고하셨습니다. 저 뒤에서 머리감으세요."

왜 이번엔 안물어보지? -_-;

여전히 머리 맘에 안들어..

Tuesday, December 12, 2006

논다

네이버에서..

Wednesday, November 29, 2006

질긴 생명력

바미와 미야의 끈질긴 괴롭힘에도 꿋꿋히 살아있다

쇼핑

드디어 빨간 점퍼에서 벗어났다. 점퍼, 바지, 신발 모두 갈아 치웠다. 신발은 사자마자 헌 신발을 버렸다. 바닥에 구멍도 난 데다 어디가 부서졌는지 계속 달그락거렸었다. 이 모든 것을 하게 한 원동력은 늦잠. 수업 들어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발동이 걸려버린 게다. 그렇다고 충동구매는 절대 아님. 한달 전에 벌렸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한 것일뿐. 겨울을 빨간 점퍼 한벌로 날 수는 없지 않겠어!

기말의 압박

기말의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는 중.
오늘(화) 기계학습 수업이 종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거 원 맨날 수업 빼먹었더니;; 내일(수) 언어철학 수업 종강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주 수업 또 빼먹었더니 연락이 늦다. 당장 다음주 수요일(12.6)까지 언어철학 페이퍼 내야 한댄다. 그리고 다다음주 화요일(12.12)엔 기계학습 시험. 이건 그리 걱정 안되지만.. 어쨌든..
미루고 미뤄왔던 물리학사 페이퍼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더니, 생각보다 뭔가가 많이 나와 버렸다. 자료가 없어도 걱정이었겠지만, 많으면... 저걸 다 읽어야 하는건가 싶어서 걱정이다. 일단 관련된 걸 추려야 할텐데 추리기 위해서도 대충 훑어보긴 해야 한단 말이지.. 이건 언제까지 해야하는 거더라.. 자료 조사한다고 정작 이번주 리딩은 아직 하나도 안읽어버렸다.
언어철학 페이퍼는 아무래도 비트겐슈타인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뭘 쓰지.. 그것도 일주일만에-.-;

Monday, November 27, 2006

미야와 바미

띠꺼운 표정의 미야. 호기심어린 표정의 바미.

Friday, November 24, 2006

겨우겨우

쿤 대 포퍼 해설도 다 써서 보냈고, 오늘은 과학철학에 투고할 논문도 다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내 논문이 저널의 reject율을 높이는 데 쓰일지, 아니면 내 실적을 높이는 데 쓰일지는 아직 미지수. 저녁 때쯤 완성을 하고 논문을 보내려고 보니, 영문 제목이랑 abstract가 빠졌더만. 그래서 낑낑매며 영작을 했다.

A Cognitive Approach to Conceptual Scheme and Reasoning: Focusing on Similarity and Case/Model-Based Reasoning

The sketch of conceptual scheme and reasoning drawn by Thomas S. Kuhn is becoming a fine theory supported by recent fruits of cognitive science. The cognitive approach to science, which cuts down the roles of rule and definition, emphasizes the roles of similarity relation and case/model-based reasoning, and puts 'cognitive actors' not 'contents' into the core of scientific practice. In this way, this approach succeeds in flexible explaining the dynamics of scientific practice. But we need to fill it up with historical and social dimension. On that score, we need to re-illuminate new roles of language.

이 영작 말이 되는걸까..

이제 놀러 내려가자. 하하..

ps. 누군가 지적하기를, 블로그 이름에 photo diary라고 적혀 있댄다. 아쉽게도 photo가 별로 없군.

Monday, November 20, 2006

다음학기

꼭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끌리는 강좌들
4541.680 지식표현 및 추론
321.714 인지과학의 철학
321.707 과학사서술 방법론

자랑쟁이 Fuller

홈페이지에 가보니, 자기가 여러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자랑해놨네. 얼굴도 그렇게 생긴 것처럼 보이는 건, 내 편견 때문이려나? -_-;

PERSONAL:
Born: 12 July 1959, New York City; US citizen, UK permanent resident since 1998.
Biography listed in Contemporary Authors, vol.137 (1992), p. 145 [updated 2002]; The Writer’s Directory (2000); Who's Who in Science and Engineering (2002); Who’s Who in the World (2003); Dictionary of International Biography (2004); The International Who’s Who (2005).
Languages (reading): French, Latin.

바미

못생긴 단풍

이번주 화요일

10:30 시험.
16:00 발제.
24:00 아래 해설 마감.

Sunday, November 19, 2006

<쿤 대 포퍼> 해설 초안

스티브 풀러(Steve Fuller)의 {쿤 대 포퍼(Kuhn vs. Popper)}는 1960년대에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S. Kuhn)과 칼 포퍼(Karl Popper)가 벌인 논쟁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파헤친 책이다. 쿤과 포퍼는 20세기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거장으로, 과학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두 사람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포퍼는 과학이 추측과 논박을 통해 발전하며 '반증 가능성의 원리'를 통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철저히 구획할 수 있다고 믿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쿤은 과학이 검증이나 반증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누적적으로 발전한다는 교과서적 관념을 무너뜨린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쿤의 1962년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paradigm)'을 채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탐구의 성공적인 모범사례(examplar)와 그것이 미래의 탐구에 제공하는 청사진 모두를 의미한다. 확립된 패러다임 하에서 연구자들은 근본적인 의심을 삼가고 틀에 박힌 문제 풀이 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쿤은 이러한 활동을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소해 보였던 문제가 계속 풀리지 않는다거나 그러한 미해결의 문제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패러다임은 '위기'에 처하고, 오직 그 때에만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분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규범을 정하는 광범위한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혁명'은 실행 가능한 대안적 패러다임이 발견되었을 때에만 일어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존의 패러다임은 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다. 따라서 혁명의 종식은 합리적 논증에서의 승리보다는 정치적 설득, 종교적 개종 그리고 세대 교체에 의해 달성되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
"과학 혁명이 초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개종과 흡사하다"는 쿤의 주장은 과학의 합리성을 세속화함으로써 과학의 인식론적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로 읽혀졌는데, 이러한 독해에 의하면 과학적 합리성이란 고작해야 특정 시기 과학자들이 합의한 패러다임에 의존할 뿐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쿤의 개념들은 객관적 지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1980-90년대에는 인간의 지식(과학)을 객관적 실재에 대한 '반영'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 하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구성'으로 보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사회구성주의적 인식론의 기초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쿤은 자신이 포스트 모더니즘과 사회구성주의의 정신적 지주로 간주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상대주의자 또는 비합리주의자로 공격하는 다른 과학철학자들에게도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변호해왔다. 도대체 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며, 포퍼는 어떤 점을 불편해했던 것일까? 1965년 실제 벌어졌던 논쟁에서 오갔던 말들을 살펴보면, {쿤 대 포퍼}에서 풀러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쿤과 포퍼 사이의 직접적인 논쟁은 1965년 7월 런던대학에서 단 한번 벌어졌는데, 이 논쟁에는 포퍼의 제자였던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와 폴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도 참여했다. 이 논쟁은 5년 후 라카토스의 제자인 무스 그레이브(Alan Musgrave)에 의해 보완되어 {비판과 지식의 성장(Criticism and Growth of Knowledge)}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한국에도 {현대 과학 철학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논쟁은 쿤의 비판적 논문으로 시작되는데, 오늘날 이는 포퍼의 과학 방법론에 대한 결정적 비판으로 평가받는다. 쿤에 따르면, "칼 포퍼 경이 강조하는 테스트들은 용납된 이론의 한계를 조사하거나 혹은 현행의 이론을 극도로 긴장시키기 위해 수행되는 것들이다. ... 그러나 그와 같은 에피소드들은 과학의 발전에서 대단히 드물게 나타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때는 언제나 관련된 분야에서 위기가 선행되었거나 현존하고 있는 연구의 규범과 경쟁하는 이론이 출현했을 경우뿐이다." 또한 "모든 이론들은 기존의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서도 다양한 임시방편적인(ad hoc) 조정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쿤은 이론과 맞지 않는 변칙사례가 등장할 때마다 이론 전체를 폐기한다면 그 이론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심도 깊게 탐구할 기회를 뺏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풀러도 인정하듯이, "비판은 오직 특정 조건에서만 생산적이며, 예를 들어 어떤 연구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에서는 생산적이지 않다. 쿤은 이점을 분명 포퍼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반면, 포퍼는 이러한 과학활동이 비판정신을 말살시키는 독단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과학이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라고 믿는다. 즉, 과학은 대담한 추측과 그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인 것으로 기술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약간의 독단주의가 필요하다고, 즉 독단적 과학자가 수행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나는 항상 강조하였다. 그러나 만일 너무 쉽게 비판에 양보한다면 우리의 이론들이 실제로 힘을 발휘할 곳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결코 찾아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내가 보건대 쿤이 기술하고 있는 '정상'과학자란 우리가 유감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 내가 보건대 '정상'과학자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았다. ... 그는 독단적 정신을 배웠다. 말하자면 그는 세뇌를 당했다. 그는 왜라는 이유를 묻지 않고서도 응용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 나는 이런 류의 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태도는 엔지니어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 훈련된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나는 다만 그런 태도 속에,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 속에, 내가 전문화의 경향 속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커다란 위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것은 과학에 대한, 실로 우리 문명에 대한 위협이다."
파이어아벤트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했다. "[쿤의 사회과학의 계승자들]에 따르면 [성공적인 과학의] 비결은 비판을 제한하고, 광범위한 이론들의 수를 하나로 줄이며, 이 단일한 이론을 그 패러다임으로 갖는 정상과학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이 서로 다른 노선들을 따라 숙고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거기 만족하여 멈추지 않는 동료들은 '더 중요한 연구'를 하도록 순응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말 쿤이 원하는 목표인가? 어떤 집단과 동일시되어야 할 필요가 점점 증가하는 것을 역사-과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인가?"
포퍼와 파이어아벤트는 논쟁에서 쿤이 지적한 비판에 대해 근거를 들어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과학은 비판적 활동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당위 수준의 우려와 반대를 표명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논쟁은 쿤의 승리로 결판났지만, 풀러는 "그것이 보다 나은 쪽의 승리였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과학의 문제를 바라보는 데 패배한 포퍼의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도 풀러는 쿤의 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과학이 무비판적이며 민주적 견제장치가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쿤의 과학적 변동의 이론에서 철학적 감시는 찾아볼 수 없다. ... 쿤의 정상과학은 마피아와 왕조, 종교적 질서의 특징들만을 결합한 정치적으로 원시적인 사회 구조였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그저 자기 한 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책임지도록 정식으로 강제하는, 오늘날의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직상의 안전장치들을 결여하고 있었다." 우리의 지식이 특정 시기에 형성된 패러다임에 의존한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지만, "그것을 안정의 원천으로 다루느냐(쿤), 아니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다루어야 하느냐(포퍼)는 다른 문제이다." 또한 "첨예한 '위기'의 상태에 접어든 패러다임에 대해서만 비판을 허용하는 쿤의 보수적인 자기만족은 또 다른 극단이었으며, 이 또한 라카토스는 참을 수 없었다." 당연히 풀러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풀러가 보기에, 20세기 후반의 과학은 민주적 견제장치가 결여된 과학자들의 자율적인 권력으로 성장해버렸는데, 쿤의 영향력 하에서 진행된 과학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사회학적) 연구들은 이를 조장하거나 적어도 방조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풀러는 쿤의 역사관이 지적으로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포퍼와 라카토스, 그리고 저자인 풀러가 보기에 역사에는 실현되지 않는 가능성들이 무궁무진하게 숨어 있다. 즉, 현재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며, 현재는 언제나 현재보다 더 나을 수 있었다. 현재가 현재처럼 된 것은 과거 행위자들의 특정한 선택 결과이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는 현재와 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쿤 이후의 과학사 서술은 과거에 대한 평가를 최대한 배제한 채, 역사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그리는 데 주력한다. 이들은 역사적 과정을 어쩔 수 없었던 일 또는 예측치 못했던 우연한 일로 그림으로써, 당시 행위자들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도리어 그들의 행위들을 합리화해주고 만다. 풀러가 보기에, 이러한 태도는 자기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풀러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비판적 정신'과 '책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두 가지 태도를 갖추지 못한 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풀러의 주장과 책 전체에서 보여준 일련의 작업은, 그동안 쿤의 계승자들이 쿤의 인식론적인 측면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그 이면의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파헤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저자의 포퍼주의적 편향은 또다른 우려를 낳는다. 여전히 포퍼는 여타의 의미있는 이론적 시도들을 자연과학의 기준에 비추어 재단하고 평가하는 보수적인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 반면, 여성주의자와 환경주의자들이 현재의 지배적 과학관을 비판하기 위해 쓰는 이론은 포퍼의 것이 아니라 쿤의 것이라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최후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기고자 한다.

Thursday, November 16, 2006

상황논리

2년전 과학사 수업에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원폭 개발계획과 그 실패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회고에 대해 발제할 기회가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은 '독일의 원폭 개발을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손수 원폭 개발의 책임자가 된 것이 바로 원폭 개발 저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원폭 개발 실패'라는 상황을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발제문에 이런 식의 변명을 '상황논리'라는 말로 표현했었는데, 당시 수강생들 대부분이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한 명이 그 말의 뜻을 물어봤고, 나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자주 약속에 늦는 친구에게 어느날 "너 약속에 왜 늦었어?"라는 질문에 "길이 막혀서요"라고 대답한다면 그런 게 상황논리라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나고였던가... 다른 한 명이 "그 상황논리란 말 철학용어니? 포퍼가 썼다고 들은 것 같던데.." 나는 금시초문이었기에 "모르겠는데. 난 학부 때 무지 자주 쓰던 말이라서. 특히 평가 같은 거 할 때 상황논리로 평가하지 말자는 식으로 무지 자주 썼었거든."

2년이 지난 어제, <쿤 대 포퍼>를 읽으면서 새삼 이 기억이 떠올랐다.

포퍼는 "사람은 자신의 관념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자기 잘못의 책임을 주변 사물, 상황에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평가로는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없다고 말이다.
포퍼가 보기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근거는 "사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의식적인 평가를 통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과거의 선택(특히 잘못된 선택)을 상황논리로 설명할 경우, 그것은 자신의 선택을 상황에 모두 양도하는 것이 되고,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런 포퍼의 감수성을 볼 때, "상황논리"란 용어는 아무래도 포퍼가 만든 말이 맞는 것 같다. 그에게 '상황논리'란 '비겁한 변명'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지난 2년간 "과거는 과거의 맥락에서만 평가해야 한다"는 쿤을 비롯한 역사학의 감수성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면, 어제 책을 읽으면서 잠자고 있던 포퍼의 감수성이 깨어나는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책이 가진 오만가지 단점을 커버해줄지도 모르겠다.

연구실에 들어온 새 한마리

이 동네에 살던 새가 아님은 분명하다.
최초 발견자인 성욱이는 자기가 키우겠다고 엄청 들떠있다.

Steve Fuller, Kuhn vs. Popper

이 책이 조만간 번역되어 나온다고 하는데, 어쩌다보니 책에 대한 해설을 쓰게 됐다. 한번 거절을 했다가 다른 경로로 또 제안이 들어오길래, 이 책이랑 인연이 있나보다 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스티브 풀러는 사실 나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싶지만, 그냥 '쿤 대 포퍼'라니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하하..

그래서 어젯밤 이 책을 다 읽었는데, 뭐랄까.. 무지 거친데다 잘난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장하고 싶은 말은 알겠고 나름 동의도 하겠는데, 그 주장을 위해 쿤을 끌여들여 이렇게 비난할 필요가 있는지, 쿤이 거기에 책임이 그렇게 큰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이 나의 잠자고 있던 정치적 감수성을 깨워줬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철학의 각 견해들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함의를 까발려준다는 점일 것이다. 책 제목은 "쿤 대 포퍼"지만, 다루는 내용은 "지식 윤리학"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은 "지식인이여, 비겁하게 굴지 말라. 변명하지 말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라"로 요약될 수 있을 듯.

"쿤 대 포퍼" 논쟁에서 어떻게 이런 내용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사서 보시오. -_-;

내가 생각해도 이 블로그 너무 성의 없어. >.<

물리학사

읽은 것 없이 들어가니 힘들고나.
선생님도 참느라 힘들었겠지. -_-;

생각할 꺼리들

첫째, 경험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연역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역은 그 적용범위가 좁다. 연역을 통한 결론은 전제에 다 속한 내용이다. 새로운 내용이 생산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지는 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편 귀납은 거칠게 말해 틀렸다. 귀납, 학습, 적응, 진화는 한통속이다. 그것들은 알고보면 하나이다.
둘째, 새로운 것의 습득은 대부분 어떠한 틀을 전제한다. 그것은 쉽게 말해 선입관이나 편견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런 틀도 없이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듯도 보인다. 그래서 플라톤은 "아는 것은 배울 필요가 없고, 모르는 것은 배울 수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것의 습득이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상기론을 얘기했었다. 이 말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는 분명 우리 인식체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고틀, 사고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쨌든, 이러한 틀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또 경험을 통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만 하다.

그냥 생각나는 키워드들. 위의 내용과 상관없음.
cognitive science, bounded rationality, patern match, paradigm, model-based reasoning, case-based reasoning, rule-based reasoning, information theory, computation theory, incompleteness, complex system, learning, evolution, adaption, democracy, association, closure, randomness, choice, concious, emergence, symbolic representation, icon, social-historical dimension

이래서야 뭘하겠다는건지 모르겠잖아;;;

Sunday, November 12, 2006

Friday, November 10, 2006

한참 지난 사진

8월 어느날. 모베르블루스. photo by ulyss's 필름절약형 카메라. 피아노는 mihoi. 노래는 me. 이 사진을 보기 전까지 무대 위에 저런 조명이 있었다는 걸 몰랐었다.

에릭양 에이전시

메일 못받았냐니까 서버가 다운됐었댄다. 사장님 바꿔달라고 하면 맨날 출장이랜다. 도대체 여기에 왜 저작권 중개료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시.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설명하긴 귀찮고.. 에릭양 욕은 하고 싶고.. 하하..

Friday, November 03, 2006

아래를 보면

맨날 놀고만 지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맞다. -_-;
이번주 발제니 시험이니 무진장 힘들었는데.. 알고보면 다 지난주까지 맨날 놀고먹은 대가다.

홍샘의 노래 외

지난 토요일, East Asian STS Student Workshop 뒷풀이 3차. 간 곳은 모베르블루스. 왼쪽은 이곳 사장님. 오른쪽은 홍샘.

우리 대학원에 지원한 학생 한명도 워크샵 참석 후 3차까지 함께했다. 노래를 부르라고 하자 못한다며 빼더라. 나는 "여기 붙으려면 노래 불러야 돼요" 은근히 겁을 줬다. 그러자 앞에 있던 홍샘 왈. "여기 지원했어?" 당황;;; 3일 전에 면접 본 학생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시다니. "이거 봐요. 얼굴도 못알아보잖아요. 빨리 노래부르고 얼굴 도장 찍어요" 결국 노래를 부르러 나가더니, 손수 기타까지 잡고 노래를 부르네. -_-;

10.24 서울 마실

대만에서 학생이 한 명 왔다. 이름은 Ching Fang Chang.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찐빵'. 어쨌든 지난 화요일 이 친구를 위한 얼떨결에 서울 관광 가이드가 되었다. 하루종일 영어 딸려서 무지 헤맸음. 위 사진은 정문에서 버스 타기 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photo zone이라고 찍어준 사진.

노트북도 고칠 겸 용산에 가서 전자상가 구경도 하고.. 청계천도 처음 가봤음. 별로 볼 건 없더만.

그래도 종로에서 먹은 떡볶이는 무지 좋아했음. 이 아저씨 마케팅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외국인 지나갈 때마다 저 '하트'로 유혹하는데, 안 넘어가는 외국인이 없을 정도.

셀카

10.20 연희동에서

금요일, 뭐 놀만한 일 없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진희누나가 연희동에 놀러가자길래, 어떤 곳에 가는지도 모른 채 따라 나섰다. 동행은 진희 누나, 현득이 형, 타쿠야, 나. 나중에 세권이 형도 등장. 우리가 간 곳은 "떡 작업실(2층) 및 갤러리(1층) 오픈 기념 파티".
아래층도 뭔가 전시가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닥 전시에는 관심이 없었고.. 잠시 후에 있을 축하공연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강산에'가 왔기 때문. 싸인이라도 받아둘 걸. 나 의외로 소심해. --;
가운데가 강산에. 왼쪽은 드럼. 오른쪽은 기타. 오른쪽 기타는 입술만 안젤리나 졸리 닮았다고 임졸리 랜다. 본명은 가르쳐줬던가 안가르쳐줬던가...

Wednesday, November 01, 2006

오일러

페르마는 다음과 같은 예상을 했다고 한다.
< 2^2^n + 1 형태의 수는 분명히 소수이다. >
 
그런데 1732년 오일러는 초인적인 계산능력으로 이 예상이 틀렷다는 것을 밝혔는데, 2^2^5 +1 = 4,294,967,297 = 6,700,417 * 641 이라는 것, 즉 소인수분해가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저 반례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_-;

이번주..

이번주... 아... 힘들다..
문제는 이번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

Friday, October 27, 2006

처량한 바미

수술부위를 햝지 못하게 배에 붕대를 감아뒀었는데, 점점 원기를 회복하더니 그 붕대를 뜯어버렸다. 다시 붕대를 묶어도 금방 뜯어버릴 것 같아서 병원에서 준 칼라를 달아주었다. 무지 싫어하는 걸 억지로 달아줬더니 좀 미안하다. 그래도 덧나면 더 안되니까... 어쨌든 좀 사진이 처량해 보인다.

아.. 다행스럽게도 바미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는 원기 왕성하다. 뛰기도 잘 뛰고 창문도 잘 연다. -_-; 가출하지 말라고 수술했더니 말야.

Thursday, October 26, 2006

자꾸만 올라가는 팬티

최근에 사각팬티를 하나 사서 입어봤는데, 이게 좀 난감하다. 요게 아침에 입은 위치에 가만히 있질 않는다. 아침에 허리춤 정도에 입고 나와도 저녁이 되면 배꼽까지 올라와 있단 말이다. 반면 바지는 아침에 입은 위치보다 좀 내려가서 골반 정도에 살짝 걸린다. 그러다 보니 팔을 들어 웃옷이 올라가기라도 하면 엄지손가락 정도의 두께로 팬티가 보이게 되는데, 누가 보면 어째 ;;;
도대체 이놈의 팬티는 왜 중력을 거슬러 거기까지 올라가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아마도 중력위치에너지의 증가량보다 탄성위치에너지의 감소량이 더 커서겠지만, 어쨌든... 괜찮은 걸로 팬티 좀 사야겠다.

비자 인터뷰 준비

비자 인터뷰 날짜가 다음주 금요일(11월 3일)로 잡혔다. 준비할 목록을 적어봅시다.
1. 여권 -> ok
2. 신청서 (아마도 DS-156) -> 작성해야 함.
3. 사진 1매 -> ok
4. 영문재학증명서, 영문성적증명서 -> 본부가서 뽑아야 함.
5. 여행 사유 자료첨부 -> 지금은 없지만 생길지도 모름.
6. 재정적 능력에 대한 증명. 보증 제도는 없어진 듯 한데 정확히 머가 필요한 걸까.. 통장잔고? 친척의 통장잔고? 친척의 재산세과세증명?

고양이 살림

고양이 두 마리가 생기고 나서부터, 매일 밤 꼬박꼬박 집에 들어가 밥을 주어야 할 것 같아졌다. 고양이 생기기 전에 집에 잘 안들어갔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거의 꼬박꼬박 집에 들어갔을텐데... 이상하게 의무감이 생긴다. 웬지 새벽 1시 전에는 들어가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게다가 지난주에 바미가 수술하고부터는, 얘가 밥 제대로 먹다 지켜도 봐야하고 때맞춰서 약도 먹여야 하고 병원도 꼬박꼬박 데려가서 통원치료도 받아야 했다. 어제 병원 데려갔더니 이제 실밥 풀 때까지는 안와도 된다고 해서 매일 집에 와서 병원 갔다 돌아오는 수고는 덜게 됐지만, 어쨌든...
일상적인 할 일도 많이 늘었다. 평소 한 달에 한번 할까말까 하던 청소도 나름 자주 해야 하게 생겼고, 그래서 그동안 필요가 없었던 청소기나 빗자루도 샀다. 고양이 화장실도 매일매일 비워줘야 하고... 이거 안 비워주면 얘네들 스트레스 받는단다.
매일 고양이들 봐서 좋기는 한데 피곤함은 전에 비해 3-4배는 되는 듯. 고양이 키우는 것도 이정도인데, 나중에 애는 어떻게 키울려나 몰라.

ps) 지난 주말 엄마가 결혼식 때문에 내 방에 잠깐 들렀었는데, 고양이 두마리가 서식하는 것을 보고는 경악해버렸다. 갖다 버리라는 압박이.. 내가 안버리면 엄마가 와서 몰래 버리겠다는 엄포까지 -_-;

수업 빠지기 놀이

지금은 기계학습 수업시간. 요즘 이 수업 심심하면 빠진다. 그냥 강의노트 보고 시험만 잘 보면 될 것 같아서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질 않는다. 게다가 이 수업 끝나면 바로 있는 물리학사 수업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_-;
참고로 수요일에 있는 언어철학 수업도 2주 연속으로 빠졌다. 수업시간마다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하는 게 지겨워서 안들어가고 있는 중.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인 "프라이 때리다(허풍치다)"도 처음 2시간 정도는 재밌었지만 하도 들으니 별 느낌이 없다. 지난번 수업에 들어갔을 때는 3시간 내내 종이에 의미없는 낙서와 그림만 그리다 나왔으니...
그런데, 어제 수업이 끝나고 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발제 순서가 바뀌어서 다음주 발제가 내가 됐다면서... 다음주에는 꼭 나오란다. 아... 싫다.

Wednesday, October 25, 2006

도시바 AS도 쓸만해

지난달에 구입한 도시바 노트북의 왼쪽 스피커가 말을 안듣길래 오늘 낮에 용산 AS센터에 갔다. 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기사분이 나오셔서 스피커가 불량이라고 하면서 교체해드리겠다고 했다. 하루정도 걸릴거라고 하면서 퀵서비스로 배달해주겠단다. 수리비는 있냐고 했더니 당연히 무료랜다. 사용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책임을 씌워보려고 할 만도 한데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러고 나왔는데.. 저녁 쯤 되서 전화가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수리가 됐으니 바로 배달을 해주겠단다. 하하.. 쓸만한 AS다.

Monday, October 23, 2006

인터넷으로 하나되는 세상

구글의 영역이 날로 확장되고 있는 듯. gmail, blogger, personalized google home, google callender, google docs & spreadsheet 등등. 최근에 다운받은 메신저 프로그램 Google talk로는 음성대화가 가능해졌는데, 원래 쓰고 있던 네이트온 음성대화보다 성능도 좋아보인다. 자체적으로 echo 방지 기능이 있는지 노트북 내장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도 하울링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처럼 "따르릉 따르릉" 연결음도 있고, 안받으면 교환이 뭐라 쫑알쫑알대면서 메시지를 남기라고 하는 게 너무 귀엽다.

점점 구글 매니아가 되어가고 있다. 하하..

Sunday, October 22, 2006

비가 온다

비가 오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보는 바깥 풍경 볼만한 것 같다.

이 비가 개고 나면 하늘도 좀 맑아지겠지.

바미의 우울한 하루

오늘 수술을 했다.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구토도 하고, 밥도 안먹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참치캔 앞이지만 입도 안대고 카메라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Friday, October 20, 2006

상습가출소녀 바미

상습적으로 가출을 일삼는 바미가 돌아오자마자 피곤한지 금방 잠이 들었다. 밖에 애인이라도 있는지 맨날맨날 가출했다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하얀 털에 온갖 물질들을 묻혀서 돌아온다. 목욕을 시켜줘야 할텐데, 그렇다고 가출할 때마다 목욕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잠든 모습이 사랑스럽다. 옆의 미야도 ^^;

집에 가는 길

이 작품들은 밤에 감상해야 제맛이 난다.

Thursday, October 19, 2006

학교가는 길에 있던 것들 2

작품 제목: 가족?
(왼쪽부터 할아버지, 엄마, 막내아들, 아빠, 삼촌, 첫째아들)

학교가는 길에 있던 것들

미대생들의 작품들. 장소는 사회대 뒷편, 미대로 가는 길목.

학교가는 길

보통은 셔틀을 타고 다니지만, 가끔은 걸어다닌다. 아마 문영여고 근처에서 찍은 듯. 당연히 셀카임. 걷는 느낌을 내기 위해 진짜 걸으면서 그냥 찍었다.

잠자는 미야


비좁은 책상 구석에서 잠든 미야

Wednesday, October 18, 2006

핸펀의 귀환

고장난 핸펀을 형수님의 중고 핸펀으로 교체하는데 성공. 하지만, 흑백액정에 버튼도 잘 안눌러진다는 거. 그래도 들리지 않는 핸펀에 비해 100만배는 쓸만함 -_-; (참고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꾼 것임)

아래는 보너스. 디카로 아웃포커싱 실험.